미륵대도 자료, 소식
      현 교황이 마지막 교황 ?
성 말라키의 예언과 파티마의 예언(성모 마리아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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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말라키의 예언
 
현재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은 1대 성 베드로 교황 이후 266대 교황으로, 바티칸 교황청의 마지막 교황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에 더 이상의 교황은 없으며, 바티칸도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의 출처는 1148년에 타계한 아일랜드의 수도승으로 아머의 대주교였던 말라키오모겐(1094~1148)으로 일명 말라키 예언이라고 불린다. 그는 심미적 환몽(幻夢)을 통해서 미래를 내다본 예언이 그가 죽은지 450년 만인 1590년 바티칸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어 도미니카파의 수도사 아놀드 드 비옹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의 예언에 의하면 자기가 살았던 12세기 초반의 교황 세레스틴 2세부터 최후의 심판 일까지 통치하게 될 마지막 교황까지 모두 1백10여명의 인물에 대해 재임기간, 출신지, 특징, 어떤 경우는 실제 이름까지도 열거했는데 보는 이들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대부분 정확했다고 한다.

우선 말라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말라키는 1094년 아일랜드의 알스타 지방에 있는 아마(Armagh)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수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학생 때부터 지식과 덕망이 높아 선생들을 놀라게 한 인물이었다. 독실한 신앙을 가졌지만 결코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으며 어느 누구와도 금세 친해졌다.
 
​말라키는 젊은 시절 ‘은자隱者 이스마 아마’ 라는 작은 종교 단체에 가입했다. 이 단체의 본부는 은자들이 사는 좁은 방이었다. 그러나 아마의 주교 세르시우스가 말라키의 자질을 한 눈에 알아보고 곧바로 말라키를 부사제로 임명했다. 말라키가 교리문답을 거쳐 민중을 전도하게 된 것은 약관 25세의 나이였다.
 
​그후 오래 지나지 않아 말라키는 방고아의 수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편한 직책이 아니었다. 그 수도원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말라키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스스로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말라키 그러한 고행을 감수하고 또 극복했다. 뿐만 아니라 말라키는 사람들로부터 "신에게서 기적과 예언을 한꺼번에 부여받은 인물"이라는 평을 받기에 이르렀다.
 
말라키는 그 후 수년 동안 치루어졌던 아일랜드 교회 개혁에서 커다란 공을 세우고 그 일이 마무리되자 교황 에우제니오 3세(1145-1153)를 알현하기 위해 로마로 향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프랑스의 클레르보Clairvaux에 들러 성 베르나르도(Bernardus, 1090~1153)과 만났다. 두 사람은 친분이 매우 두터웠으며, 당시 역사문헌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말라키는 이곳에서 교황에 관한 유명한 예언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말라키의 증언은 보통 크기의 종이로 인쇄하면 7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라틴어로 쓴 111 어구語句는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1143년에 즉위한 첼레스티노 2세(1143-1144)부터 시작해 111 명의 교황을 표현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가 예언한 교황들 중 최근의 교황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자.
 
요한 23세(1958-1963년)는 ’목자이며 사공’이라고 표현돼 있다. 해설가들은 그가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 총대주교였다는 점을 들어 ’용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베네치아 총대주교의 별명은 ’사공’이었다고 한다.
 
바오로 6세(1897∼1978) 교황을 ’꽃 중의 꽃’으로 표현 했는데 그를 배출한 이탈리아 몬티니 가문의 문장이 ’백합’이라고 한다.
 
요한 바오로 1세(1912~1978)는 ’달포’(대략 한달 정도의 기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는 겨우 33일간 재위하다 숨을 거두고 말았다.

베네딕토 16세(1927~)는 ‘올리브나무의 영광’ 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베네딕트회의 상징이 올리브이다.
 
성 말라키의 예언대로라면 현재 교황 프란치스코(1936~)는 로마의 마지막 교황으로 로마의 베드로(Peter the Roman)일 것이라 한다. 로마의 베드로를 마지막으로 법왕 시대는 끝난다는 것이다. 그는 베드로에 대해서 ‘일곱 개 언덕의 도읍(로마)은 파괴되고 무서운 재판관이 사람들을 재판하리라' 고 묘사하고 있다.
 
In persecutione extrem a S.R.E. sedebit Petrus Romanus, qui pascet  oues in multis tribulationibus: quibus transactis ciuitas septicollis diruetur, & Iudex trem?us iudicabit populum suum. Finis. (In extreme persecution, the seat of the Holy Roman Church will be occupied by Peter the Roman, who will feed the sheep through many tribulations, at the term of which the city of seven hills will be destroyed, and the formidable Judge will judge his people. The End.)
 
< 성스러운 로마의 교회는 극단적인 종교적 박해와 시련을 당하게 되고 다음 점령자(왜 교황대신 이런 단어를 썼는지 궁금)인 피터 더 로만은 수많은 시련 가운데 신자들을 이끌 것이다 . 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일곱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이탈리아 로마) 는 파괴가 될 것이며 무시무시한 재판관이 사람들을 재판할 것이다. END >
 
성 말라키 예언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베드로(Peter the Roman)인지 살펴보자.

프란체스코 1세 교황은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76세) 부모님이 이탈리아 출신으로 5남매중 한 명으로 태어났으며 남미로 이주한 로마인,Roman이라고 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1세 라는 이름을 중세의 성자인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데 성 프란치스코의 full name이 '죠반니 프란치스코 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Giovanni Francesco di Pietro Bernardone)라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의 풀 네임에는 피에드로(Pietro)라는 이름이 들어가는데 이것은 베드로(Peter)의 이탈리아식 표기이다.
 
성 말라키 예언대로 현재 프란체스코 1세 교황은 로마의 베드로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의 The End가 많이 거슬린다.
 
이 외에 여러 가지 내용들이 더 있지만 말라키의 예언에 대한 부연 설명들이니 약하기로 한다. 이 예언이 맞다면 현재의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 된다.


2. 파티마의 예언 (성모 마리아의 예언)

1981년 5월 2일 더블린에서 런던으로 가는 아일랜드 항공기 내에서 기괴한 하이재킹(비행기 납치)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전직 수도사인 로렌스 다우니(당시 53세)라는 사람이 저질렀는데, 그의 요구사항은 '바티칸(로마법왕청)은 파티마 제 3의 계시를 세상에 공표하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 '파티마 제 3의 계시' 내용이 무엇이길래, 전직 수도사까지 지낸 사람이 국제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는 항공기 납치 소동을 벌였던 것일까? 파티마 제 3의 계시 내용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들은 교황청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의혹만 부풀린 채 하이재킹은 정리되고 비밀은 영원히 묻혀 버린 듯 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시기, 1917년 5월 13일에 포르투갈의 작은 시골 마을 ‘파티마’에 사는 세 어린이 루치아, 프란시스코, 야신타는 늘 하던 대로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파란 색 빛무리가 아이들을 에둘러 싸며 번개가 내려쳤다. 아이들은 유사시에 비를 피하던 '코바 다 이리아'(Cova da Iria)로 급히 몸을 피했다. 그들 앞에 수심에 찬 한 여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여인은 자신이 마리아라고 밝히며 세 아이에게 세계 제 1차 대전이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을 권유한 후,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에 나타나겠다고 약속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세 아이가 마리아와 만나기로 한 날, 많은 사람들이 '코바 다 이리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여인은 아이들에게만 모습을 나타낼 뿐 군중들에게는 그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군중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들은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벌이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태양 빛이 느닷없이 강해졌다 약해지는가 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무게에 의해서 짓눌리듯 나뭇가지 끝이 휘었고 작은 구름이 손에 닿을만한 거리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파티마에서의 세 번째 발현인 1917년 7월 13일에 성모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발현이 실제 일어났다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이 믿도록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 보이겠노라고 약속하였다. 루치아는 성모 마리아의 말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자, 신문기자, 교수, 성직자를 비롯한  70,000명의 사람들이 코바 다 이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1917년 10월 13일 성모마리아가 약속한 그 날 파티마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짙은 잿빛 구름이 흩어지면서 생긴 넓은 공간에서 눈부신 태양이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의 머리 위까지 쏟아져 내린 태양은 별안간 회전하며 온 천지에 빛을 흩뿌려댔다. 루치아는 군중을 향해 태양을 보라고 크게 소리쳤다. 루치아가 태양을 응시하는 동안, 하늘에는 여러 성인이 나타났고, 태양은 불 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면서 무지개 색깔의 광선들을 발산하며 지상을 물들였다. 그렇게 몇 분 동안 회전하던 태양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는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수차례 빛의 파노라마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향해 쇄도해 내려왔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파티마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타는 듯한 열을 내뿜으며 추락하는 태양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올려다 보았다. 그들은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고 있는 태양에 부딪쳐 압사당하거나 타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군중들은 진흙땅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들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떨어지던 태양은 정지했고 다시 빠르게‘갈지(之)’자를 그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곤 어느 지점에 정지하더니 여느 때와 같은 평범한 태양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눈이 부셔 태양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지난 밤 내린 비 때문에 온 몸이 진흙 투성이였던 사람들은 티끌 하나 남지 않은 채 깨끗이 말라 있는 자신의 옷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이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 중에는 불치병이 완쾌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 현상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십 km 떨어진 인근 마을의 주민들도 목격하였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빛의 기적을 자신들이 목격한 그대로를 교황에게 보고하였고 교황청은 파티마를 성지로 선포했다. 그러한 선포는 파티마에 출현했던 여인이 성모 마리아였다는 것과 그 모든 현상들이 단순한 집단 최면이 아닌, 마리아가 연출한 기적이었음을 전 세계 만방에 공인한 것이었다. 

(성모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던 프란치스코와 야신타는 1989년 5월 1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경자로 공식 선언되어으며, 2000년 5월 13일에는 두 사람에게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이에게 내리는 시복까지 하였다. 야신타는 이제까지 있던 박해받지 않고서 복녀품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리스본의 일간지 '오 세쿨로'(O Seculo)의 편집자는「충격의 현상, 파티마의 하늘에서 태양이 어떻게 춤을 추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칼럼니스트 알베리노 드 알메이다는 당시 현장에서 목격한 현상에 대해 “엄청난 인파가 구름 속에서 삐져나와 하늘 한가운데에 있는 태양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모두 모자를 벗고 있던 군중의 놀란 시야 앞에서 태양이 우주의 법칙을 벗어난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태양이 춤을 추었던 것이다.”라고 보도하였다.
 
리스본의 매일 일간지 《오 디아 (O Dia)》는 1917년 10월 17일자 에서 “마치 태양에 투명한 베일을 씌운 것처럼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다. 태양은 우중충한 회색으로 빛나는 은반 모양이 되었고 서서히 빛이 퍼져서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회색빛 천으로 덮은 듯한 은빛이 나는 태양이 물러나며 구름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며 주춤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을 통하여 빛나는 것처럼 빛은 푸른색으로 바뀌어 커다란 회전바퀴 축에서 퍼져 나가듯이 빛이 퍼져 나갔다. 서서히 푸른빛이 사라지고 이제는 노란색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것처럼 보였다. 노란색 점들이 하얀색 면사포와 검은색 치마로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 빛은 낮은 곳에 있는 떡갈나무와 바위들, 언덕까지도 한없이 물들였다. 모든 사람은 기대했던 기적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흐느꼈으며 모자를 벗고 기도하였다. 몇 초간의 시간이 몇 년처럼 느껴졌고 그들은 살아온 보람을 충분히 느꼈다.”라고 보도하였다.
 
시인 알폰소 로페스 비에이라와 학교 교사 델피나 로페스와 학생들의 당시 목격담에 따르면, 태양의 기적 현상은 최고 40km 떨어진 곳에서도 목격되었다고 한다.

예언 가운데 제1의 예언(지옥의 생생한 모습, 1차 대전의 종결)과 제2의 예언(2차 세계 대전의 발발)은 1942년에 교회 당국에 의해서 공표되었으며, 파티마 제3의 예언 내용은 성모마리아의 명령대로 발표되지 않았다. 그렇게 교황청에 의해 83년 동안이나 철저히 극비리에 붙여 왔던 파티마의 제 3 예언은 21세기에 들어서 드디어 외부에 공개하게 되었다.

1981년 바티칸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암살기도 사건이 있은 후 교황청은 제 3계시는 바로 그것이었다고 2001년 발표를 한다.

1계시- 세계 1차 대전의 종결
2계시-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및 소련의 대두와 몰락
3계시- 교황의 암살 미수사건 ??
 
그러나 이 발표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 교황청의 발표대로 세 번째 예언이 교황 개인과 관련된 일이라면 굳이 그것을 제일 마지막에 보여 줬을 리 없으며 교황청이 무려 백년 가까운 시간동안 철저히 비밀로 간직해 왔을 리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같은 공표는 단순히 마지막 예언의 공개를 요구하는 세인들의 관심을 잠재우기 위한 바티칸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들은 반박했다.
 
하지만 교황청은 발표한 내용 외에 그 어떠한 비밀도 없다며 세인들의 의문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파티마의 세 번째 예언은 또다시 궁금증만 남긴 채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매스컴의 끊임없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발표현장에서 요제프 라징거 추기경(이후에 베네딕토16세 교황이 되었다.)은 당시 아이들이 본 모습 중 천사가 불타는 칼을 들고 있는 장면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아이들이 목격한 장면은 인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지만, 미래는 결코 확정되어져 있는 것은 아니며 어린이들이 본 미래는 우리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부언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파티마에서 성모마리아가 세명의 아이들에게 세 번째 예언과 관련된 환영을 보여줬을때,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경기를 일으켰고 심지어 실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2차대전과 지옥의 생생한 모습도 덤덤히 봤던 아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을 봤길래 실신까지 했던 것일까? 교황 암살 미수 사건이라고 하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파티마의  제3의 비밀을 처음으로 열어 본 사람은 바오로 12세 교황으로서, 이 때는 1958년 가을이었으나 그는 1963년의 재위 기간까지 예언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 계시의 전문을 읽은 사람은 바오로 6세 교황(재위기간 1963~1978)으로 이 기록을 보고 너무도 충격을 받아 의자에서 떨어져 실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파티마 제 3의 계시라고 하는데 수십 년 동안 감춰진 채 있다가, 바오로 6세에 이르러서야 그 예언의 일부만이 공개되었다. 예언의 전모를 알고 있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의 출현을 직접 봤던 세 명의 아이. 그 중 한 명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몇 년 전(2005년 2월)에 사망하였으며, 현재 교황 외에는 파티마 제 3계시의 전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걸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오 6세가 큰 충격속에 성모마리아의 예언을 읽어 본 후 세계 교회에 발송한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 하느님의 벌은 홍수(노아 때의 대홍수)때 보다도 더욱 비참하게 된다. 위대한 사람이거나, 세력이 없는 사람이거나, 착한 사람이거나 또는 나쁜 놈이거나 모두 함께 멸망한다. 새로운 세기에 가서 큰 전쟁이 일어난다. 불과 연기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며, 큰 바다의 물은 끓는 물처럼 치솟아 오른다. 그 환란에 의해서 지상의 많은 것은 파괴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산 사람은 오히려 죽은 사람을 부러워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다. 목자는 그 신도들과 함께 멸망하게 된다. 이르는 곳마다 죽음이 승리를 부른다.

성모마리아를 직접 봤던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포르투갈의 갈멜 수녀원에서 홀로 엄격한 기도 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는 루치아의 수기에서 성모마리아 출현을 함께 봤던 야신타가 사망하기 전에 영적 능력을 얻어서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고 밝히고 있다, (야신타와 프란시스코는 성모의 예언대로 그 후 2, 3년 뒤에 감기로 죽었다.)
 
...아, 가엾어라. 법왕님. 법왕님이 층층대를 내려오시며 수많은 시체를 넘을 때,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욕설을 내뱉었고, 법왕님은 손을 이마에 대고 울고 계셨다....
 
법왕 비오 10세(pius X, 1835~1914)는 1909년에 프란시스코 수도회 총회를 응대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실신상태에 빠졌는데, 얼마 후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공포에 질린 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오오, 얼마나 무서운 광경인가. 나 자신일수도, 나의 후계자인지도 모르지만, 그는 로마법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바티칸을 떠날 때에 ‘사제들의 시체를 밟아 넘으며’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펌글)
 
올린이 참고 : 이 글은 미륵대도와 관련이 없는 글입니다.

                     - 용화세상 개설자 올림 -